2013.04 ] 65년 전 4월 3일… 천주교 제주 4·3 희생자 넋 기리다

홈피맹그미 0 3,259 2019.06.0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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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지난달 29일 오후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앞. 예수 그리스도로 분장한 남자 배우가 십자가에 못 박혀 울부짖는 장면을 연기하는 순간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와 신자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원래 바람이 많은 섬이긴 하나 이날 따라 유독 거센 바람이 불어 연기자는 물론 관객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예수의 마지막 길을 재연하는 배우들의 진지하고 감동적인 연기 때문인지 공연 내내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예수의 숨이 끊어지는 대목에선 제주교구장 강우일(68) 주교의 눈에도 살포시 이슬이 맺혔다. 

이날 공연은 ‘어머니, 그 이름은 깊고 강하다’라는 주제로 제주교구 청소년사목위원회가 주관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1시간30분 동안 재연했다. 

제주교구가 이 행사를 마련한 건 올해 65주기를 맞은 4·3사건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서다. 1948년 4월3일 발생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을 국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와 무관한 도민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2000년대 들어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고 추모를 위한 공원도 조성했으나, 다수 도민들에게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강 주교는 이날 강론과 기도를 통해 “지난 일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 감정으로 슬픔과 눈물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며 “진정한 참회와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책임 있게 살아가고, 긴 안목으로 미래를 보며, 평화를 위해 함께 걷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분(예수)은 평화와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처럼 십자가의 삶을 산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겁니다.” 강 주교의 마무리 발언을 들은 신자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4·3사건 피해자 위로 외에도 올해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20일 개장하는 ‘하논성당길’이 대표적이다. 제주교구가 제주도·제주관광공사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 길은 서귀포시 송산동 서귀포성당에서 출발해 서귀포 최초의 성당이었던 옛 하논성당 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영하는 ‘면형의 집’ 등을 거쳐 서귀포성당으로 돌아오는 10.6㎞ 코스다. 일부 구간은 제주도 최고 명물인 ‘올레길’과도 만난다. 제주도의 천주교 순례길은 2012년 개장한 ‘김대건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강 주교는 ‘하논성당길’ 개장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순례길을 걷는 행위는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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